도시, 마을 그리고 공동체
그때의 소감? 후기를 진보신당 부산시당에 보냈는데 여기에도 소개해 봅니다.
몇군데 살짝 수정하긴 했지만, 애초에 쓴 글은 밥사주고 술사주고 재워주신 부산시당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글 인지라, 특정 정당에 대한 당파성이 좀 많이 묻어나오는 글인 점때문에 올릴까 말까 며칠 망설였는데요. 혹시 불편하시다면 양해 부탁드립니다. 부산 도시공간이야기에 초점을 맞춰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이하 평어....
....
수행팀장을 하시는 노태민 동지와 함께 집을 나서서 부산시당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아홉시가 약간 넘었다. 선대본부장님이 야전침대에서 일어나 우리를 반겨주셨다. 시당 사무실에 있던 지도를 보고 대충 사상구를 머리에 넣고 이내 후보님와 함께 길을 나섰다. 군사적 비유를 싫어하지만, 야전침대와 지도를 보고 나니, 명함을 챙기시는 후보의 모습은 꼭 실탄을 장전하는 돌격대장이다. 그렇다면 저 명함은 호흡기로 평등을, 피부로는 생태와 연대를, 소화기로는 평화를 전염시키는 진보 화생방탄?
재개발 비대위 위원장을 하시는 분과 합류하여 먼저 감전에 가니, 동네 어르신들이 예전 지역 대책위 사무실로 쓰시던 곳에 모여 계셨다. 간담회가 시작된 후에도 계속 한두 명씩 모이셨고, 처음에는 차분하시던 분들도 말씀 중에는 상당히 격앙되시는 등, 지역 주민들의 정서가 가감없이 와 닿았다. 감전은 기존 도시기반시설도 양호하고, 건물도 노후화되지 않아서 ‘재개발’의 요건에 전혀 해당되지 않는 동네였다. 물론 ‘삐까뻔쩍’한 고층 상가나 아파트에 비하면 다소 촌스러울 수 있겠으나, 개별 건물주인의 이해나 권리를 굳이 무시하면서 공공이 개입하거나, 조합이 설립되어서 굳이 다른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할 필요가 전혀 없는 동네이건만, 재개발을 한다고 한다.
이곳은 도시계획법제상 상업지역이 아니라 주거지역이었다. 그러니 재개발을 아예 안 할 것이라면 모르되, 어디까지나 1.지역이 노후화 되어 재건축/재개발이 필요하고 2.부산에 주택이 모자란다는 전제하에, 주거지역으로 재개발 하면서 아파트를 짓겟다는 것 자체는 수긍할 만 했다.
그런데 대책위에서는 상업지역으로 재개발되는 것이 낫지 않나 하는 의견도 있었던 것이 다소 의외였다. 하지만 용도지역이나 용도지구의 변경문제는 김해나 창원의 도시계획까지 포함해서 광역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요, 사상역 주변의 도심기능을 어떻게 육성할 것인지 종합적인 차원에서 보아야 할 문제일 것이다.
야간 공동화를 막기 위해서 주거지가 분명 있어야 하겠지만, 오로지 주택밖에 없어서 베드타운이 되는 것도 문제이긴 하다. 이 지역의 경우 사상역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곳이고 사상역 주변이 이미 고밀 상업지역이므로, 얼핏 보기에는 나중에도 주거지역으로 계속 지정되는 것에는 문제가 없을 듯 싶다. 다만 평지이므로 용적률을 완화해 주되, 개발이익을 공공에서 환수를 하거나, 용적률을 제한해야할 다른 지역과 짝을 지워 ‘개발권양도제’를 적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역들에게 당한 수모, 또 폭행을 당했지만 공권력이나 사법당국에서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일들을 털어놓는 주민들에게 후보님은 진땀을 흘렸다. 삶의 터전이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집 한 채는 있으되 보상 받을 돈으로 전세값을 빼 준 뒤에는 오갈 데가 없다는 막막함을 토로하는 이들은 자신의 처지가 세입자보다 그리 나을 것도 없다고 하소연을 한다. 젊은 세대들은 일을 나간 낮 시간이라, 대체로 연세가 많은 분들이 모이셔서 자신의 노후에 이런 일이 생긴 것이 황당하고 미칠 노릇이라 절규하다시피 한다.
그 자리에 진보정당의 시장후보가 앉아서 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별로 없다. 우선은 주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자고 마련한 자리인지라, 당장 준비해온 대안이 없는 것이 큰 부담은 아니다. 하지만 몇 년 뒤가 되면 우리가 그럴싸한 대안을 들고 이들에게 다가설 수 있을까? 대안이 만들어진다 해도 우리가, 그리고 지역주민이 그 정책을 관철할 힘을 가지게 될 날은 언제일까? 메모를 하면서 아득하다.
시장이 되던 안 되던, 진보신당 부산위원장으로서 이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겠다는 인사말을 후보님이 하시고 우리는 나섰다. 나섰는데, 지각해서 오시는 할머니들이 우리를 보더니 “왜 벌써 가냐”고 웃으시며 야단치신다. 오늘 모이신 분들이 과연 주민들을 얼마나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까도 궁금했는데, 이런 분들을 보니 상황이 좀 더 이해가 간다.
괘법지구 상가건물 2층에 빈 사무실 벽에는 곳곳에 신문기사 복사한 것이나 구호와 대자보가 붙어있었고, 한편에는 피켓도 많았다. 여기에는 소방차가 들어갈 수 없는 좁고 구불구불한 길들과 자잘한 필지들로 채워진 재개발이 필요한 구역이 있다. 문제의 발단은, 열악한 구역이 그리 넓지가 않아서 사업성이 떨어지자(=돈이 덜 되자), 멀쩡한 그 앞쪽까지 포함해서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한 것이다.
앞쪽은, 몇해 전에 벌써 한번 재개발 된 것처럼 가로 구획이 바둑판으로 반듯하고 건물들도 2~3층 이상의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 동네를 왜 헐까...? 하긴. 서울의 용산도 그런 구역을 허물겠다고 하다가 그 ‘사태’가 벌어진 것 아닌가. 몇십억 몇백억이 왔다갔다 하는데, 멀쩡하게 서있는 건물들이 오히려 ‘부동산개발동맹’에게는 눈에 가시일 것이다. 그리고 이 동맹은 그 가시를 쉽게 뽑을 만큼 힘이 세고, 방해하는 사람은 가시와 같이 뽑을 만큼 잔인하다. 그러는 한편, 메트릭스가 떠오른다 - 세 들어 장사하는 이들은 안 오고, 가게 분양받은 점포주들만 온 것 같고, 벽에는 “첨단산업지구가 조성되면 우리의 재산가치는 더 커집니다, 그런데 이런 헐값이 웬말입니까”’라는 문구도 있다.
영화 메트릭스에서 컴퓨터의 노예가 된 인간은, 메트릭스라는 시스템 안에서 계속해서 컴퓨터를 위해 봉사한다. 한때 체제에 반기를 들고 투쟁의 대열에 동참했던 이들도, 가상세계의 스테이크와 포도주같은 떡고물을 먹고 동료를 배신하기도 한다. ‘부동산개발동맹’이 천억을 먹는 대신 9백억만 먹고 나머지 백억을 주민에게 풀면, 주민들은 투쟁의 대열에서 이탈할 것이다. 부당한 개발이익과 불로소득의 발생을 규탄하다가도, 나에게도 몫이 돌아온다면 그 개발동맹에 순순히 동참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런 개발의 광풍 속에, 1960년부터 지금까지 주택보급율은 증가했지만, 자가소유율은 오히려 감소했으니 왠 조화일까? 혹시, '개발이익을 잘 나누어 먹자'는 분배의 정의, 소유권의 분쟁이 아니라, '개발이익의 발생' 그자체에서 뭔가 문제가 싹트는 것이 아닐까? 이미 생긴 개발이익에 대한 이전투구에서의 사회정의가 1차적인 정의라면, 뭔가 더 근본적인 문제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즉, 문제는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찾기 위한 '이윤의 분배', 즉 '임금 인상'의 차원을 넘어, '노동의 소외' 혹은 노동에서 이윤이 생기는 시스템자체에도 있듯이, 공간에서 생긴 이윤을 나눠 먹는 단계 이전에, 이윤이 생기는 과정 자체에 필연적으로 불평등의 경향이 내재되어 있을 거라는 거다. 토지와 주태의 '탈시장화'를 외치는 근거다.)
동참자들 중에는 국가, 혹은 부산의 미래를 미우나 고우나 짊어질 거대 자본을 위해서, 지역정당을 위해서 ‘착하게’ 넘어가는 이도 있고, 이건 아닌데 싶어도 투쟁을 이어가기엔 하루의 삶이 고달파서 최소한의 보상을 받고 체념하고 돌아서는 이도 있다. 그런 이들이 가지는 소박한 ‘내 집 마련의 꿈’에 대고, “1가구 1주택이라 해도 결국 자가소유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사회주택을 통해서 주택을 탈 시장화 해야 합니다”라고 원칙론을 들이대기엔, 이들의 처지는 너무 고달프다. 이들은 주택을 ‘소유’하긴 했으나 어지간한 시내의 전셋집에서 사는 이들보다 더 열악한 상황이라 그렇다.
오후 늦게 찾아간 서대신 구역. 토지는 무허가이나 건축물은 등록한 채 살고 있던 어느 할머니에게 철거에 대한 총 보상비는 7백만원. 집을 몽땅 허물고 그 돈을 주는데, 새로 입주해야할 집은 평당 7백만원. 응? 한 평에서 살라고? 장난하나?
다른 분은 설문조사한다고 하여 희망평수 적어냈더니 그걸 분양신청으로 둔갑시켜놓고, 분양취소를 못해준단다. 몇천만원을 무조건 마련해 오라는 거다.
더 어이없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확실하게 서류를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토지를 불하해 주겠다고 하여 여태 몇 년간 돈을 부었는데, 이주보상비가 여태 부었던 돈 보다 적게 나왔다는 경우가 있다. 이건, '국가 = 가진 자들의 위원회' 라고 하기에도 벅차다. 위원회 씩이나. 그냥 '국가 = 조폭'이다. 결코 웃을 일이 아닌데, 당장 내 일이 아니라고 속으로 든 생각이,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다.
지금이 2000하고도 10년의 대한민국이 맞나 말이다. 처음과 두 번째의 경우는 그래도 8,90년대 싸워온 철거투쟁과 사회 전바의 민주화의 성과가 반영된, 도시계획 제도상의 약간의 진보가 엿보이는 사례였다. 제도를 악용해서 건설회사나 지방정부는 뒤로 숨는 경우라 하더라도, 주민제안제도라는 것도 생겨서 이를 통하거나 한다. 판결이 어찌날런지는 모르지만, 조합인가취소소송도 가능하다.
하지만 마지막의 서대신 구역은 타임머신을 타고 80년대 말이나 90년대 초로 되돌아간 듯하다. 사람이 살고 있는데, 옆에 건물을 다 부셔 놓고, 쓰레기도 안 치워간다. 고약한 동네 냄새만큼이나 입맛도 쓰다. 비대위 위원장님이 “그동안 주거복지단체는,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도대체 뭘 했습니까!”라고 일갈하시는데, 할 말이 없었다. 아니 정말, 이렇게까지 전통(?)적인 재개발이 계속될 줄, 정말 몰랐다.
주민간담회 전에는 철거가 예정된 교회를 방문하여 목사님의 격려기도에 고개를 숙이기도 하였다. 그쪽 구역에서는 사업성을 위해서 종교용지도 그냥 무시하고, 몇푼의 보상비로 때우려는 모양이다. 종교시설이라는 것이 단순히 땅과 건물이 아니오, 교인들로 이루어진 ‘지역공동체’일텐데, 더구나 여기는 병설 유치원에서 여태 1400명 정도 키워낸 곳이다. 그런데 새로 지어질 동네에서는 종교용지가 필요없다고, 200평이 넘던 땅을 양보하여 그럼 100평정도만 달라고 해도 조합에서 막무가내라고 한다.
세입자가 아닌, 집을 가진 주민 80프로인지 90프로인지가 일단 조합을 만들면, 조합원의 이익 극대화, 아니, 건설사의 이익극대화와 그를 통해서 임원에게 떨어질 떡고물을 위해서, 그리고 조합원들의 자산가치의 약간의 상승을 위해서, 모든 것이 밀려난다. 피난민 구제사업에서 출발 했다는 유서 깊은 교회도, 보도연맹 학살사건이 이루어졌던 터도, 지은지 10년 밖에 안 된 작은 아파트도, 얼마천 2천만원을 들여 개축한 단독주택도 그냥 도박 판돈에 들어간다. 미분양문제가 사회문제가 되는데, 무조건 땅을 튀겨서 더 짓겠다는 거다. 판돈? 하긴 돈은 재활용이나 되지. 재활용도 안되는 멀쩡한 콘크리트를 헐고 다시 지으니, 일인당 시멘트 소비량이 연간 1톤이 넘을 수 밖에. 세계최고요, 2위 일본의 두배란다. 녹색성장 좋아하시네.
평소 운동권 정당을 그리 좋게 보지는 않았다는 목사님이셨다고 스스로 고백하신다. 그런 분이 ‘탐욕에 눈이 먼 도시개발’을 우려하며 우리에게 “큰일을 하시도록 동료와 후원인들을 허락하소서”라 기도를 하고, 주민들이 “용산에서 사람들이 왜 화염병을 던졌는지 알겠다”,“나도 가스통 들고 구청 찾아갈까 망설인다”라고 하게 되는 이런 상황에서, 과연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위협하고, 사회불안을 조성하며, 계급갈등을 부채질하고, 주민들을 의식화 시키는 것은 누구일까? 국가보안법은 뭐하고 있나, 여기 부산의 수백 개 재개발 구역에서 ‘개발동맹’이 체제전복을 사주하고 있는데!!
점심식사 직후에는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반대집회에서 비옷을 쓰고 온통 비를 맞고 서있던 우리의 후보는, 오후에 영도다리를 건너 산등성이를 올라 주민들의 원성과 격려를 흠뻑 뒤집어쓴다. 선거법상으로 공식 선거운동을 할 수는 없었지만, 예전에 출마했던 소개말을 통해 자연스레 6월2일 선거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니 주민들은 현 구청장과 시장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면서, 한나라당을 안 찍겠다고, 그러니 열심히 해 보시라고 격려의 소나기를 퍼붓는다.
하지만 왠지 투표장에서는 또 마법에 걸린 듯 1번을 찍으실 분들 같다고, 자기 자식에게는 투쟁하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서 돈 많이 벌라고 하실 것 같다고, 이번 일 전에는 용산의 희생자들을 경원하지는 않으셨을까, 지레 씁쓰레 하는 내가 삐뚤어진 것일까?
시간이 어느새 6시가 되어간다. 후보님께 이후 용산참사1주기 추모제에 가는 일정을 이분들께 이야기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넌지시 말씀드렸다. 뭐 굳이 같이 가자고 부담을 드리기 보다는, 용산의 문제가 곧 여기의 문제라는 이야기, 그리고 우리 후보와 당은 단순히 득표의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주민들께 전해드리자는 생각이었다.
우리의 후보님이 용산 추모제에 간다고 이야기를 하시면서, “이런 문제들에 대한 대안을 꾸준히 고민하고 있습니다”고 인사를 마쳤다. 이어, 비대위 위원장님이 “같이 가실래요?”라고 할 때, 좀 전까지 울분을 토하시던 분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외면하는 모습을 하나하나 확인하게 되었다. 아.. 우리가 갈 길이 아직 멀구나!!
연대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일차원적인 주민의식 때문이었던, 연대를 쉽게 하지 못하는 고단한 삶 때문이었던, 그런 곳에 가면 운동권들이 지역주민을 가르치려 드는 것이 싫다는 그 분들의 ‘올바른 선입견(?)’ 때문이었던, 우리가 갈 길이 참 멀다.
다른 편에는 ‘자본의 탐욕 혹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있다. 경제에서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구미 선진국의 두 배가 되는 우리나라에서, 건설자본은 끊임없이 개발이나 재개발의 껀수를 찾아 전 국토를 들쑤시고 다닌다. 안 쑤시면 굶으니까. 이 건설자본의 비중을 줄이는 건 도시공간정책으로만 될 일이 아니다. 경제/산업정책차원에서 함께 다루어야 한다. ‘살기좋은 도시’나 ‘소외당하는 철거민’을 위한 시민단체로만 될 일이 아니라, 정당이 이 문제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여전히 우리가 갈 길은 멀다. 물론 정당운동이 문제해결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일단 나는 정당운동을 하겠지만, 주민운동도, 지역운동도 활성화되어야 한다. 네델란드와 같은 주택협회로 '자활'의 노력이 보태지는 것도 필요하겠다.
촛불행진에 가시는 시장후보를 홀로 지하철에서 내리시게 하고는 부산시당으로 복귀하면서 생각한다. 십 수년전에 임대주택단지와 재개발 지역 등에서 만났던 주민들은 아직 그대로 우리 곁에 있구나. 그리고 되새김질한다. 지지정당을 묻는 나에게 “정치인들은 다 똑같애”라고 냉소와 체념과 절망의 웃음을 보이던 철거촌의 주민들과, 그들에게 “안 그런 정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던 다짐.
그 이후 선거도 많았고, 투쟁도 많았으며, 실천할 시간은 계속 있었다. 사실, 기회는 없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보여주지 못했을 뿐. 다시 또, 우리의 힘을 활에 담아 후보라는 화살에 쏟아 붇는 계절이 돌아왔다. 파이팅(투쟁!)이다.
딱히 제 글에 반론을 하신 것 같지는 않지만, '이익'에 대해 부연설명을 하자면..
저는 '주민의 이익'vs'공공성'의 대립각을 세우려 한 것이 아니고요, '주택(혹은 토지, 혹은 자산)의 소유자'vs 세입자, 주택의 소유자vs미래세대(중 특히 세입자)의 구도에서 세입자나 미래세대의 이익이 전혀 고려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이야기 하고 싶어요.
특히, 소유자들의 경우에도 '좀더 좋은 환경에서 살고 싶은 마음' 보다는 '가격이 오르면 팔고 떠나야지'하는 마음이 더 강한 것이 문제 같습니다. '교환가치'가 '사용가치'를 철저히 압살한 경우라고나 할까요. 이에 관해서는 우석훈의 <괴물의 탄생>의 열한번째 강의에서 제 고민과 거의 95프로 이상 일치하는 입장으로 나름 잘 설명되어 있더군요. 그책 추천 한방^^. 도시관련 공부에 누가 추천하라 한다면 '공포경제학시리즈 중에서 <88만원 세대>와 더불어 이 책까지 두 개를 추천하고 싶네요
저는 사람들이 스스로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믿을 뿐,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구조적으로나 제도적으로 규정된 조건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패턴을 (숙고하지 않고) 모방하면서 스스로 '합리적인 대세'에 뭍어가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개개인이 패턴을 거스르는 가치를 가지고 지키는 것은 훌륭한 일이지만 쉬운 일이 아니죠 (가령 목적의식적으로 정주의식을 갖는 일).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제약에도 불구하고, 행위주체의 능동적인 전략에 기반해서 가치를 만들어내고, 지키고, 확산시키는 것이 바로 운동이고 많은 구조적, 제도적 변화의 촉발점이 이런 운동에서 시작된다는 점에서 경호씨의 관점도 일정 동의가 되기는 합니다. 하지만, 도시정책이라는 점에서 접근하면 실질적으로 부동산 가격 상승을 지속시키고, 정주로 인해 발생하는 도시공동체의 외부효과를 인정하지 않는 제도적 환경에 대한 논의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효정씨의 접근도 동의가 됩니다. 양 축의 접근법이 대조적이지만 대립적이지만은 않죠. 하지만 육지의 사자와 바다의 상어의 싸움이 불가능한 것처럼, 종종 이런 논점이 재미없게 흘러가는 보았기에 한 마디 붙였습니다.
그나저나,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에 대한 최장집 교수의 레디앙 서평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17595 의 3. 연구의 사회학적 중요성에서 소개된 내용은 정말 겉도는 지방자치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것 같네요. (사실, 다 알고는 있지만, 체계적으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던 문제)
ㅎㅎ 드디어 저와 봄곰님 말고도 누군가가 답글을... 아무도 말씀이 없으시길래 너무 전문적인 얘기였나.. 싶기도 했고, 또 한편으론 제 답글은 그 수준도 아닌데.. 싶었는데^^
봄내님이 봄곰님의 사회운동적인 면이랑, 제 공공정책적인 접근의 요약을 잘해주셨네요. 첫단락은 제가 하고 싶었지만 제대로 못다룬 얘기도 써주셨구... 모방의 기저에는 모방하려는 행위의 정당성이 인정되어 있는 상태인데다, 한편으로는 강제와 구속 역시 그것의 공고화를 거든다는 점에서, 합리적인 행동의 이면에는 "합리화"가 늘 따라오는 것 같아요. 음. 합리화가 먼저이고 합리적인 행동이 그 뒤에 따라 오는건가? 아무튼 공공정책에서도 역시 가치의 전복은 늘 지향해야할 덕목이라 생각합니다. 운동과 정책이 깔끔히 나눠지지도 않겠지만은...
겉으로 보기에 도시문제를 얘기하고 있지만, 그 기저에 줄곧 일반사회학이론의 핵심주제(구조/개인, 합리성)가 논의되고 있어서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제 입장을 먼저 말하자면, 효정님이 정당하다고 지적한 참여에 내재해 있는 이익의 추구나 봄곰님이 문제시한 주택소유자의 "가격이 오르면 팔고 떠나는" 행위는 모두 "합리적"으로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행위는 정당하고 합리적으로 봐야한다고 지적된 반면, 어떤 행위는 "모방", "대세에 물듬", "패턴"이라는 비합리성을 표상하는 언어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것이든 사람들은 (일정한 가체체계에 기반한) 제도화된 틀 안에서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그래서 제한된 선택지들 중에서) 나름대로 최대한의 합리성(또는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관적 합리성'이라는 개념이 나오는 것이구요. 쉽게 풀어서 말하자면, '좀더 좋은 환경에서 살고 싶은 마음' 보다는 '가격이 오르면 팔고 떠나야지'하는 마음이 더 큰게 문제라기 보다는, 그들은 그동안의 역사적이고 직간접적인 경험을 비롯한 여러 정보들을 통해 '정주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팔고 떠나서 얻을수 있는 이익'이 실제로 크다고 믿고 있는 것인데.. 그 믿음을 비합리적이라 볼수 없을뿐 아니라 안타깝지만 현실적인 맥락에서 틀렸다고 보기도 어렵죠. (남한의 급격한 산업화 및 도시화와 토건역사가 그것을 '현실'로 만든 것이죠.) 그래서 정주개념이 약화된 것이 문제라면 그것을 비합리적이라 여기기 보다는 (그렇게 하면 그 원인을 엉뚱하게 파악하게 되기 쉽고, 단순히 '계몽'의 대상으로 여길 우려도 있으므로), 그것의 합리적인 근거를 찾아봐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시각의 연장선에서, 정책적으로 정주가 실질적으로 좋은 주거환경을 만들고 그래서 실제로 더 이익이 된다고 믿어질수 있는 실질적인 제도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며, 사회운동적 차원에서는 그들이 정보의 제한으로 미처 깨닫지 못한 이익들을 알려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개발논리가 상대적으로 덜 미치는 특정 지역에서 일종의 모델을 실험하는, 그래서 중심에서의 정책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주의 장점을 경험할수 있도록 해주는 방법을 고민해봐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결국 저는 효정님이 첫 댓글에서 잘 상기시켜준 것처럼, 어떻게 개인적 이익을 공적 이익과 대립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 것인가, 나아가 어떻게 개인적 이익들을 공공성의 틀로 묶어낼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합니다. 사실 이문제는 이래 오래전부터 정치사상가들이 고민했던 것이긴 한데.. 여전히 잘 풀리지 않는걸 보면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옆집 가격이 몇억씩 오르는 상황에서 '주택을 투자(투기)의 대상으로 여기지 말자'고 외쳐봤자, 앉아서 돈까먹는 짓임을 몸으로 체득한 우리들에게는 공허한 외침이겠지요. 집을 안 사도 충분히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제 철학이라면 철학인데, 그래서 '가격 인하'에 너무 집착했던 기존 정부의 정책이 (그 입안자들의 진정성과는 별개로) '소유자 중심 사회'강화라는 한계가 있었다고 봅니다. 그 패러다임을 깨고 싶은 거고요. 그리고 그 패러다임 내부에서 보아도, 집을 사는 순간 그 집값이 오르길 바라는 것이 '주관적 합리성'을 가진 '유권자'들이기에, '집값만' 잡겠다는 정책은 성공하는 순간 그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을 양산하는, 비극적 운명의 정책이라는 생각이지요.
'정주'와는 다소 동떨어진 이야기로 번졌는데, 사실은 '무조건 한군데서 오래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주식처럼 팔고 떠나면 그만'인 집을 소유하고, 교환가치때문에 주거환경을 따지는 것 보다는,
'(공공으로부터) 빌려서 살거나, (비영리기구를 통해)공유해서 살더라도 사는 동안 주거환경 그 자체를 가꾸는 노력'을 하는 것이 집합적인 결과로 더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올거라는 주장을 하고 싶었던 것이죠.
국가가 큰 역할을 하는 스웨덴의 주거복지도 관심이 가긴 하지만 거기에서의 국가의 역할이 한국과 너무나 달라서 아쉬울 따름입니다. 물론 깊이 참고는 해야겠지요.
무튼 나중에 주택협회 만들면 많이들 회원으로 가입해서 같이 살면 좋겠슴다 ^^; 뭐 집을 사고 싶다는 개인의 선택은 어디까지나 존중하지만, 안 사고도 잘 살 수 있는 모델을 같이 만들어 보면 좋겠슴다...

봄날의곰
비단터
참여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이익집단이라는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프랑스 동네 주민들은 우리와 달라서 공공의 이익만 생각하나요?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살고 싶은 마음은 어딜가나 똑같습니다. 벌써 시민참여가 아니라 주민참여라는건, 참여라는 틀로 주민이라는 특정집단의 이익을 정당화하는 거지요. 다들 이익을 추구하면서 왜 그걸 동시에 터부시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문제는 공적 이익, 이의 기저에 있는 공공성은 무엇이고 이걸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하는데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