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이런건 단순작업에 노가다일 뿐 누구나 다 할수 있는거 아니냐며 무시했었지만, 막상 프랑스에 와서 박사논문을 쓰다보니 그게 아니란걸 깨달았다. 어짜피 철저한 사유를 통한 직관, 통찰, 창의 등은 극소수의 천재들에게나 가능한 것이고.. 원래 공부는 그냥 엉덩이로 하는 것이며.. 시간과 발품을 들여서 실증적인 자료들을 모으지 않으면 독창적인 얘기를 할 수 없다는걸..  

 

그래도 이 책은 연구라기보다는 아주 훌륭한 자료집이라고 하는게 맞을것 같다. 166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 서울시 내 522개 각종 정치사회적 통계들을 정리했단다. 누가 이런 무식하고 엄청난 작업을 했나 했더니 역시나..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민주노총 대변인과 심상정의원 보좌관을 지낸 손낙구씨이란다.

 

이렇게 fact를 잘 정리해주는 시스템과 문화가 잘 구축되어 있어야 사회과학이 발전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 정부부처 및 기관, 지자체, 민간 기구, 연구소, 사회단체, 노조 등이 각자의 영역에서 그동안 기록하고 정리해서 축적해온 다양한 주제와 대상에 대한 보고서와 자료들, 그리고 그에 대한 접근성을 경험한다면 누구도 놀라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토대가 있기에 훌륭한 사회과학 연구들도 많이 나올수 있는 것이다. 프랑스 사회과학의 강점이 바로 실증연구에 있는데, 최근에 여기서 그 실증연구방법을 잘 배워간 선배들도 한국에 가면 그런 연구를 잘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한국은 achive인프라가 형편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일본도 자료수집, 기록, 정리, 축적, 보관 그런걸 참 잘한다. 참고로 우석훈은 <촌놈들의 제국주의>에서 그것을 제국주의를 해본 나라들의 특징이라 했다. 물론 이들 나라들은 식민통치를 위해서 갖가지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할 필요성으로 더욱 발달했겠지만, 제국주의 이전에 유럽 내에서부터 이미 시작된 근대성의 주요한 측면으로 이해하는게 보다 근본적일 것이다.

 

암튼 가장 흥미로운 분석결과는 한나라당 지지율이 높은 부자동네의 투표율이 높고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당을 지지할만한 가난한 동네의 투표율이 낮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점.. 즉 홍세화류의 "존재를 배반한 의식" 테제가 부각시키는 측면과 달리, 사실은 가난한 사람들이 한나라당을 찍는 것이라기 보다는 투표를 안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기반으로 취재한 <플러스 후>는 그 이유를 깔끔하게 설명해 주었다. 부자들은 자신들이 지켜야할 것들에 대해 민감하기 때문에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데, 한나라당은 부동산정책이나 감세 등으로 그들에게 충실하게 보답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가난한 사람들은 생활고에 치이고 뜨네기도 많은데다, 어짜피 누굴 뽑아봐도 별로 달라질게 없다는 생각이 많아서 투표율이 낮은 것이고.. 그전에도 그런 측면이 없지 않았겠지만 특히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10년동안 더 그렇게 만들어 놨다. 진보정당들에 대해서는 당선 가능성이 낮아보인다는게 그들을 적극적으로 투표소로 나오게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일테다. 나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국회의원 수를 늘리는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작은 지역에서부터 기초의회와 기초단체장 진출에 집중해서 진보정당은 맡겨보니 다르다는걸 실제로 '경험'하도록 해주고 수권능력과 당선가능성도 있다는걸 보여는게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아무튼 이 자료집은 한국에 가서 작업을 할때 나에게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More information :  "왜 가난한 사람들은 투표하러 가지 않나?" - 오마이뉴스

이 게시물을..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