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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밤의 경쟁프로인 '놀러와', '강심장' 등에 확연하게 밀리는 분위기에서 무리수를 둔 듯 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제작진보다 여대생 출연자들에게 비난이 더욱 가중되는 상황이다
그 중에서도 '이도경'이라는 경영학을 전공하는 대학 3학년의 학생이 여론의 비난 속에 무척 괴로울 듯 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도경 학생은 작가가 써 준 원고를 참고하여 '루저'라는 발언을 했다고 하지만
작가들도 기본적인 인터뷰 과정을 통하여 원고를 작성하기 때문에 그 발언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이도경 학생만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발언을 편집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더욱 부각시킨 제작진에 대한 책임이 더 크다
하지만 더욱 큰 책임은 우리 사회 아니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22살의 여대생의 발언은 전체적으로 '확신'을 가진 '소신'발언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소신을 가질 수 있게 만든 것이 바로 우리 사회이자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그의 신상을 종합해 보면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에 입학하여 3학기인지 6학기인지 정확하지 않으나 어찌 되었든 연속으로
장학금을 받으면서 '황금사다리'라는 대학교 대상 프로그램에서 홍익대 퀸카로 뽑혀
태권도 3단의 실력과 170cm의 날씬한 미모를 발산하였다
그리고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 인터뷰에서는 여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소한 관심'이라고
연애관을 말하기도 하였다
물론 미수다에서는 골방에서 장동건이랑 살 수 없다고 '사랑이 밥 먹여 주지 않는다'라는 발언을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난 이도경을 변명하고 싶다
모든 것들이 서울 중심이 세상에서 지방은 루저일 수 밖에 없다
이도경 학생은 그 루저의 땅 지방에서 서울에 진학하여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고 또 서울사람들처럼
명품가방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누렸다
명품이라는 욕망이 개인 스스로의 의지에서 만들어졌다고 보지 않는다
180cm 이하는 루저라는 말에 남자들은 C컵 이하는 루저라고 말했다
경기가 어려울 수록 미니스커트의 길이가 짧아진다고 한다
고용이 어려울 수록 결국 여자들은 섹스어필을 해야만 취업이든 시집이든 소망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는
바이다
이도경 학생은 졸업사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변신을 하였다
살찐 돼지 같았다는 과 선배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그는 지성과 미모를 가진 3학년 여대생이 되었다
대충대충 어영부영 하는 평범한 대학생보다 더 많은 노력과 정성이 있었던 것은 사실인 듯 하다
1년에 천만원의 학비와 뉴타운 개발을 통하여 치솟은 방값과 비싸진 물가 등은 어찌보면 순수한 사랑으로로도
모자란 22살 여대생에게 사랑 없는 결혼도 가능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였다
그리고 주변에서 너무나 쉽게 사는 곳, 신체, 학벌, 재산 등에 따라 사람을 구별짓는 모습들을 당연하게 봐
왔을 것이다
이런 사회를 만들어 놓고 그 속에서 치열하게 루저가 되지 않게 발버둥친 사람에게 사람들은 테러에 가까운
손가락질을 한다
우리를 되돌아 보자 (우리란 유럽에 사는 좌파적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 한정해도 좋다)
우리는 과연 그의 고향이 서울인지 서울이 아닌지 나누지 않는가?
우리는 과연 서울에서도 강남과 강북을 나누지 않는가?
우리는 과연 그의 출신학교가 서울인지 서울이 아닌지 나누지 않는가?
우리는 과연 무리 안에서도 왕따와 주류를 나누지 않는가?
우리는 과연 국내파와 해외파로 나누지 않는가?
우리는 과연 미국파와 비미국파로 나누지 않는가?
우리는 과연 신체적 매력도가 있음과 없음을 나누지 않는가?
우리는 과연 경제적으로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나누지 않는가?
우리는 과연 도시 중심에 사는 사람과 도시 외곽에 사는 사람을 나누지 않는가?
우리는 과연 전망있는 전공과 그렇지 않은 전공으로 나누지 않는가?
그 이외에도 군대, 나이, 경력, 부모의 능력, 형제의 능력 등등으로 나누지 않는가?
그렇게 다 나누고 나누고 또 나누고 거기에서 밀린 사람들을 루저라고 생각하고 루저 아닌 사람들끼리
표현하면서 어린 이도경 학생에게는 돌을 던지고 있지 않은가?
(어리다는 뜻은 어리석거나 절대적으로 미성숙했다는 뜻보다는 저와 나이 차이 때문에 어리다고 느껴짐)
우리는 얼마나 신체적 차이에 대하여 차별받지 않는 세상, 지역이나 출신 학교 등에 차별받지 않는 세상,
나 자신과 나 이외의 조건에 따라 차별 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노력했는가? 반문하고 싶다
미수다의 이도경 학생의 문제는 여성의 문제라기보다는 루저들을 양상하고 차별하고 또는 끼리끼리
뭉쳐서 손가락질하는 그 값싼 우리들의 문화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분명 이런 문제는 우리 안에도 존재한다고 본다
이도경 학생이 말한 루저에 기준에 너무나도 충족한 나이지만 그와 같은 이유에
그녀를 쉽게 비난하기도 쉽지 않다
'변희재의 노이즈마케팅에 말려들기' 류..라는 생각과, 제작진 잘못인지 누구 잘못인지 잘 모르겠기에, 뭐 이 문제를 가지고 글을 쓰는 것이 별로 내키지는 않았습니다. 근데 벌써 두 개나 글이 올라왔네요.
개똥녀 사건등 이런 일들에서 저는 네티즌의 광적인 마녀사냥이 더 무서울 뿐입니다. 설령 아무 개념없는 말을 했다 하더라도, 그 개념없다는 것이 온통 자신의 사생활이 까발려질 만큼 잘 못한 것일런지.. 황우석 사건때 피디수첩의 가족의 신상명세까지 다 까발려지는 걸 보며..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었죠.
그리고 제일 씁쓸한 것은.. 레딩앙의 관련기사에 댓글에서 본 바.. 만약 그이가 "150이하면 루저"라고 했으면 이렇게 난리가 났을가 하는 의문입니다.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포함되는 기준으로 180을 제시했으니 이렇게 난리지..
만약 소수만 걸리는 기준을 이야기했다면, 많은 이들은 그저 자신이 거기 포함 되지 않는다는 걸로 안도를 하거나, 오히려 같은 편에서서 편 바깥쪽으로 돌을 던지며 "이 루저들"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노동자들이 파업할 때, 철거민들이 농성할 때 처럼...
그런 면에서 "문제는 여성의 문제라기보다는 루저들을 양상하고 차별하고 또는 끼리끼리 뭉쳐서 손가락질하는 그 값싼 우리들의 문화가 문제라고 생각한다"는 파리애상님의 말씀에 전폭 동의. (양상=양산? ㅋ)
하지만, 발언자에 대한 마녀사냥에는 반대하지만, 그 발언에 대해서는 충분히 비판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래의 비단터님의 글에서도 잘 지적이 되었지만,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서 '엿볼수 있는' 21세기 대한민국의 '많은 한국 20대 여성'의 사고방식도 물론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외모를 가지고 경제력과 맞바꾸려는 상품화 근성보다는 오히려 노예근성에 더 가까운 것도 같았습니다. 자유를 두려워하는...
마지막으로 명토박아 두고 싶은 것은 ㅋ ... 그게 여성만의 잘못이 아니라는 거. 많은 한국 남성들이 찌질하니까. 어떠한 사회나 그 속에서의 남(여)성은 여(남)성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것일텐데, 특히 한국에서는 가부장적인 문화가 더 세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더 낮은 상황에서, 소위 '서양'에서처럼 '당당하게' 여성들이 살기란 너무나 힘든 노릇이죠. 남자 책임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겁니다.
이러고보니, '스펙'중심주의 중 하나인 '외모지상주의'에 따른 '<수혜자부담의 원칙>과 같은 인간관계의 상품화'중 하나인 데이트비용문제 등, 그것이 '여-남 대결구도'로 번지고, 여기에 네티즌 수사대의 '왕따의 파시즘'이 얽히고.. 은근히 복잡한 문제였군요.
그나저나, 사실 고등학교때 부터 항상.. ㅠㅠ 키커지는 약이 없나 아쉬워했는데.. 만약 그런게 생기면.. 키가 큰것이 더이상 메리트가 없어지려나요? 만약 남자들이 전부다 키가 185라고 하면, 그럼 키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게 되는 것일까요?
그저께 영화 '클론'을 봤는데. 자신의 실제 모습으로 외출하기가 두려워서, 뇌파로 조종하는 복제물만 내보내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뭐 영화처럼 기술이 발전된 미래가 아니라 지금도 최소한 사이버세계에서는 가능한 이야기죠.
외모, 그 놈의 외모가 뭔지. 그러나 한편, 외모와 떨어져서 존재할 수 있는 자아나 정체성이 있을 수 있는 것인지. 그렇다면 우리는 '타인의 시선'이나 '폭력적인 기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인지.

봄날의곰
이도경씨가 루저니 어쩌구 표현했던것도 마찬가지고, 슈주 멤버가 뚱뚱한 여자가 싫다고 말한 것 역시 간단한 개인의 호오나 실언의 여부를 벗어나서 더 큰 틀에서 보자면 내나 같은 논리라고 생각합니다. 즉, 특히 한국사회에서 성공의 척도는 종종 <보여지는 것>으로 표현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보여지는 것>은 곧 그 사람이 성공했냐 아니냐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보여지는 것들, 소위 멋지고 블링블링한 모든 것들은 간단히 말하면, 돈이지요. 음...그런데 그렇게 돈을 갈구하는데 결국은 "값싼" 문화가 된다는 얘기 한번 참.. 기가 막히네요.ㅋㅋ
..."데이지가 너무 경솔했어." 나는 내 생각을 말했다. "저 목소리는 뭔가로 가득 차 있군. 뭐랄까. 그..." 순간 말이 막혔다.
"돈이 가득 차있겠지" 개츠비가 갑자기 말했다.
그렇다. 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돈이 가득 담겨있었다. 높은 목소리의 그칠 줄 모르는 매력, 짤랑거리는 소리, 그것을 상징하는 노래가 바로 그것이었다. 하얀 궁전에 사는 공주님, 황금의 아가씨..."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