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게시판 - 다양한 주제에 대한 진보적 시각의 칼럼과 토론
장난감 중에 ‘루빅스 큐브’라는 것이 있습니다. 각 면이 9개로 분할된 정육면체의 플라스틱 장난감인데, 이름만 생소하지 모두 잘 알고계신 퍼즐 장난감입니다. 이리 저리 돌려서 각 면이 같은 색으로 맞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요. 이 장난감이 우리에게 주는 딜레마는 당장 한 면을 맞추려다 보면, 다른 면들이 얼그러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면들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한 면을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요.
이미 오래전 프랑스에서도 이슈였던 학교에서의 히잡(이슬람 여성들이 머리에 두르는 머리덮개)에 대한 논쟁이 벨기에에서 확산일로에 있습니다. 이 사안은 흑백이 분명하지 않은, 그래서 다양한 측면을 동시에 이해해야 하는 복잡한 문제이면서, 동시에 세계화에 따른 이주의 증가와 이에 따른 문화적 충돌이 빈번해지는 우리 시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인 것 같습니다. 관련된 논쟁들을 보면서 저는 어릴 때 큐브를 하면서 느꼈던 난감함에 종종 부딪히곤 합니다. 하나의 일관된 논리로는 해석되지 않는 문제...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야 하는 문제... 다만, 큐브와의 차이점은 큐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낼 수 있는 게임인 반면, 이런 계통의 문제들은 그 끝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간단히 논쟁을 소개하면서, 고민되는 지점을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1. 배경
벨기에는 교육자치의 원칙에 따라, 학교에서의 종교상징물 착용금지가 개별 학교의 자율적인 규정에 맞겨져 있습니다. 종교상징물 착용금지가 도입된 것은 공립학교의 세속주의적 성격을 지키기 위해 카톨릭의 상징물에 대한 금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던 것이었지만, 최근에는 눈에 띄는 상징물인 히잡에 대한 금지로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학교가 이를 금지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령,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플랑드르언어권정부1)의 700여 학교들에서는 최근까지 1/3이 금지, 1/3이 허용, 1/3이 관련 규정이 없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민인구의 지속적인 증가로 인해 이슬람 인구가 증가하면서, 히잡이 허용된 학교로 이슬람계 학생들이 몰리거나, 금지된 학교에서 학교를 상대로 한 행정소송이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9월 1일 플랑드르지역 안트워프의 두 고등학교가 히잡을 착용한 학생의 등교를 금지한 조치에 대해 당사자들이 최고행정재판소에 이의를 제기했고, 이에 대해 최고행정재판소는 선고를 앞둔 9월 8일에 ‘이러한 종류의 조치는 개별 학교가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언급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플랑드르언어권정부 교육평의회에 모인 700여 플랑드르 학교 교장들은 플랑드르언어권정부 권한 아래에 있는 학교에서(카톨릭 학교는 제외) 히잡 착용 금지를 결정하여 이 사안을 개별 학교의 문제가 아닌 언어권정부(적어도 교육문제에서는 최고의 권한을 가진)의 문제로 격상시키게 되었습니다.
또한 9월 8일에는 왈룬지역(불어권) 초등학교의 개별적 조치(시의회의 지원을 받기는 했지만)에 대한 소송에서 베르비에 지방법원이 ‘퇴학조치가 통보되기 이전까지는 학생들이 히잡을 착용한 채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긴급조치를 내렸습니다.
결국, 9월 11일에는 안트워프 사례에 대한 최고행정재판소의 입장이 나왔는데, 그 내용이 참 어정쩡하기 그지없습니다. ‘학교가 금지를 구체화하고, 이를 통해 학생들을 수업에 오지 못하게 하면 학생들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으나, 현재의 상태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학교에 가지 않고 있는 것이므로 이의제기는 아직 성급하다’는 것이 요지입니다. 즉, 학교에 오지 말라고는 했으나, 학교에 왔다고 해서 강제로 퇴학시킨 경우까지는 아니고, 조치에 반발한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학교에 가지 않는 형국이므로 이의제기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베르비에 지방법원이나 최고행정재판소의 애매한 판결들은 벨기에의 합의전통에 비추어 볼 때 ‘어떠한 결정을 내리기에는 토론이 충분하지 않다’는 일종의 유예선고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최근에는 벨기에 전역, 특히 아직 언어권정부 차원의 결정이 없는 불어언어권정부 지역에서의 논쟁이 본격화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2. 주요 논지
1) 히잡 착용금지의 논리
히잡 착용금지에 대한 조치들의 이면에는 분명히 인종/종교적인 차별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안트워프의 고등학교들에서 이번에 취해진 조치들은 해당 학교의 의지라기 보다는 다른 학교들로부터의 압력에 의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는 안트워프 지역에서 우세하게 나타나는 민족주의적 정치성향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히잡 착용금지가 사회적 논쟁이 되는 것은 이러한 암묵적인 동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합리적인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히잡 착용금지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그 이유를 경청할 만 합니다.
* 공교육의 공공성
국가의 재정지원을 받는 공교육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건강한 사회의 성원으로 키우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학생들은 인종, 종교, 소득 등 다양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 사회에서 평등한 성원으로서 차별없이 교육되어져야 합니다.
근대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공공성의 담지자로서의 국가는 사적 영역인 종교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고, 특히 벨기에와 같이 강력한 카톨릭 전통의 국가에서 공화주의적 세속주의가 국가형성의 한 축을 맡아온 나라에서는 학교가 세속주의와 카톨릭의 대결의 장이었습니다. 결국 벨기에는 세속주의 철학에 기초한 공립학교와 종교적 자율성을 유지한 카톨릭학교로 이중적인 교육체계가 구축되었고, 따라서 공립학교는 종교와의 투쟁에서 세속주의가 승리한 상징과도 같습니다(프랑스는 더 심한 경우죠).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종교적 상징물을 금지한 것은 이슬람에 대한 차별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공교육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인 것입니다. 좀더 이성주의에 근거한 주장에 따르면, 아이들의 종교는 사실상 아이들의 자유에 의해 선택된 것이 아니라 부모에 의해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종교를 선택할 수 있을 때까지 학교는 종교적 강제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고도 합니다. 이러한 취지에서 어떤 세속주의 학자는 적어도 정서적으로 민감한 청소년기인 중고등학교 만이라도 종교적 상징물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더군요.
*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대응책
학교별로 히잡에 대한 허용여부가 다르기 때문에, 점점 히잡이 허용되는 학교로 이슬람계 학생들이 몰리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다른 학생들이 빠져나가면서 히잡을 허용하는 학교가 게토화되는 현상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개별 학교 내의 다양성이 사라지는 결과를 낳게 되죠.
또한 열성적 이슬람 교인들이 히잡을 종교적 강제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문제들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비교적 세속주의적인 이슬람들은 히잡에 대해 자유로운 편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여학생들이 열성적 교인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는 보고가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입장의 사람들은 최근 증가하는 히잡 착용금지 학교들에 대한 이의제기 증가가 종교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한 의도적인 경향이라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어떤 이들은 히잡으로부터 유일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이 학교이기 때문에 이슬람 소녀들이 히잡 착용 금지를 더 원한다고도 이야기하더군요.
2) 히잡 착용 금지에 대한 반대 논리
반대논리는 상대적으로 간단합니다. 먼저 문화적, 종교적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의 이면에는 증가하는 금지조치의 이면에 인종적/종교적 차별이 있다는 진단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로 자주 강조되는 것은 교육자치에 대한 존중논리입니다. 금지를 하던, 하지 않던 간에 그것은 학교의 자율적 결정의 문제이지 언어권정부 수준의 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입니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논쟁에 국한해서 보면, 이번에 취해진 플랑드르언어권정부의 결정은 너무 성급했고, 충분한 사회적 토론을 갖지 않은 결정이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전 플랑드르 지방정부의 수반이었던 사회당의 베르트 안시오 같은 사람은 이번 조치가 ‘개방성과 다양성의 훼손’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반대’라고 강력하게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3. 정치세력들의 입장
다소간 흥미로운 것은 이 논의에 임하는 정치세력들(적어도 불어권의)의 입장입니다. 가장 분명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은 MR(자유주의, 중도우파)입니다. 속마음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표면적으로 MR는 세속주의적 관점에 기반해서 국가의 종교적 중립성을 위해 히잡의 착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6월 지방선거 이후, 구성된 브뤼셀 지방의회에 CdH (기존 기민당, 중도파)의 젊은 여성의원이 히잡을 착용하고 의회에 참석하는 것에 대해서도 MR 의원들이 정치의 종교적 중립성을 위해 종교적 상징물 착용을 반대한다는 의견을 적극 개진한 바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전체적으로 다른 불어권 정당들의 의견이 신중한 관망세인 반면, MR의 당수인 디디에 렌델스는 지난 9월 20일에 있었던 TV 대담에서 이제는 정치세력들이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으며, 자신은 적어도 16세까지는 종교적 상징물을 금지하는데 찬성임을 밝혔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세속주의적 관점은 전통적으로 사회당의 것이었다는 점입니다.
사회당 당수인 엘리오 디 루포의 인터뷰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마침 질문이 이 문제에 몰려있더군요. 저 또한 사회당의 입장을 듣고 싶었는데, 이 사람의 입장은 한 마디로 ‘토론이 더 필요하다’였습니다. 현재 불어언어권정부와 왈룬 및 브뤼셀 지방정부에서 연립여당을 구성하고 있는 사회당, CdH(구 기민당), 녹색당의 전반적인 입장은 ‘토론이 더 필요’하고, ‘교육자치가 존중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고, 뉘앙스에서는 히잡 착용금지에 대해 부정적인 편입니다.
4. 시사점
이번 논쟁을 계기로 히잡 착용 여부에 대한 판단이 개별 학교의 독자적인 판단의 영역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언어권정부 수준의 일관된 방침이 정해질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적어도 불어권에서는 상위수준의 방침으로 결정하는 정치적 부담을 지려고 할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두 가지 측면에서 이번 논쟁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첫째는 인구학적 변동에 따른 사회문화적 변동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프랑스나 독일, 영국과 같은 큰 나라들에 비해서 벨기에는 상대적으로 이주민 문제가 두드러진 편은 아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이주민 규모가 적었고, 관용적인 사회분위기도 이주민 문제에 관대한 편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꾸준히 증가한 이주민과 이들 대부분의 사회적, 문화적 구심인 이슬람교의 증가가 일정한 관용의 임계점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이번 논쟁입니다. 누구도 내놓고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논쟁이 본격화된 것에는 제도화된 이성의 힘으로 눌러왔던 인종적/종교적 편견이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세계적인 수준의 인구이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21세기에 이 문제는 이제 누구도 자유롭지 않은 문제라 할 것입니다. 규범적인 답을 넘어서서, 당장 눈앞에서 새롭게 나타나는 사회문제들에 대해 어떠한 지혜로운 해법을 찾을 것인가가 점점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공식적인 논쟁이 보여주는 시사점입니다. 히잡 착용 금지에 대한 두 의견이 표면 상 내세우는 주장은 자유가 무엇이냐에 대한 고전적인 논쟁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표현의 자유와 같은 지금 당장의 자유와 ‘진정한’ 자유를 위해 필요한 일시적인 규제 사이의 갈등은 자유와 규범에 관련된 많은 논쟁에서 발견되는 주제인 것 같습니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최근 한국의 많은 웹사이트들에서 나타나는 다소간 병리적인 현상 (무한자유를 주장하며 온라인을 개판으로 만드는 사람들과 이를 합리적으로 규제하지 못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무기력함. 이를 틈탄 수구세력들의 구시대적인 온라인 규제정책의 부활)에서도 비슷한 갈등을 떠올리게 됩니다.
다른 유럽나라들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논의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몇 년 전 프랑스에서 관련 논쟁이 있을 때는 사실 큰 관심없이 지나쳤는데, 막상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고 있네요. 여유 있으신 분들은 다른 나라에서의 이야기들을 나누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벨기에는 언어에 따른 연방제국가입니다. 연방정부 아래에는 지역구분에 따른 지방정부(플랑드르, 왈룬, 브뤼셀)가 있고, 언어구분에 따른 언어권정부(흔히 커뮤니티라고 부르는데, 플랑드르어, 불어, 독일어)가 있습니다. 플랑드르 지방전부와 브뤼셀의 일부가 플랑드르 언어권정부의 영역이고, 왈룬 지방 대부분과 브뤼셀의 상당부분이 불어언어권정부의 영역이며, 독일쪽에 가까운 왈룬 지방 일부에 독일어언어권 정부가 있습니다. 언어권정부의 권한은 주로 교육, 복지, 문화에 관련된 것들입니다. 
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가 모든 사회구성원들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말은 성립불가능하다고 보여집니다. 제 생각에는 히잡착용은 허용하고, 이후 일어나는 차별과 공공영역에서의 개인적 종교활동(전도, 선교등)을 금하는 것이 사회가 추구하는 정의와 공공성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될 듯 하네요.
지금여기님이 지적하신대로, 원칙적으로 현재 문제가 되는 규정은 히잡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상징물 (십자가상을 포함하여)에 대한 것이랍니다. 십자가 목걸이 등에 얼마나 엄격히 적용되는지 모르겠지만요...
제 동료 중에 한 명이 대표적으로 이러한 관점을 보여주고 있는데, 가령 개인적으로 종교를 갖는 것은 자유이지만 공공영역에서 사적인 문제인 종교를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것(특히, 사리분별이 아직 부족하다고 할 수 있는 초중고교에서)은 문제라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기독교를 포함해서요... 종교는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한 나이에 주체적으로 받아들여야 진정한 자신의 종교가 될 수 있다는 논리더군요.
그렇다고 벨기에가 종교를 배척하는 나라는 아닙니다. 도리어 카톨릭 계열학교에는 카톨릭 종교수업이 있지만, 공립학교에는 카톨릭, 개신교, 이슬람, 유대교, 윤리 (비종교인을 위한) 수업이 초등학교 1학년부터 선택수업으로 제시되고, 모든 학생들이 이 중에 하나씩은 선택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저희 딸이 지금 초등학교 1학년인데, 개신교를 신청한 것이 저희 딸 혼자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1명을 위해서 개신교 수업을 개설해주는 것을 당연한 학교의 의무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저희가 유난을 떠는 것 같아서 학교쪽에 좀 미안했는데, (교장선생님이 한국계 입양인이어서 잘 알고 지내거든요) 1명을 위한 수업을 위해서 많은 배려를 해주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모습에 조금 감동도 받았습니다.
제겐, 정교분리의 원칙에 따라 히잡 착용 금지에 찬성하는 논리가 꽤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글쎄요... 어떻게 보면 정교분리라는 게 보편적인 원리 같지만, 달리 보면 여전히 그것은 근대유럽적인 가치라고 해야 할 것도 같습니다. 실제로 이슬람권에서는 정교분리가 보편적이라고 할 수도 없잖아요. 현실적으로/역사적으로 서유럽에서, 엄청난 권위를 휘두르던 "기독교"를 대상으로 해서 형성된 "정교분리"라는 원칙이, 어차피 그 사회들 내부에서 정치적/사회적 소수에 속하는 다른 종교들에까지 적용되어야 하는지, 그럴 수 있는지... 일단 이런 것에 의문이 남고요...
다른 한편으로, "정교분리"라는 게 실제 서유럽에서 어떻게 존재하느냐를 보는 것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사실 형식적/제도적으로 정교분리를 한다고 하는 서유럽 나라들 중에도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정당들이 상당한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물론 제가 이것을 두고 그런 나라들에서 정교분리가 안 됐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정교분리가 현존하는 "형태"입니다. 말하자면 이때 종교에 기반을 둔 정당은, 형식적으로 보면 (과거와 같이) 종교적 특권에 기반을 두고 특권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다른 여러 이해집단들(정당들)과 함께 그들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존재하는 것이죠. 하여튼 이렇게, 형식적으로는 정교분리가 이뤄졌지만 어떤 면에서는 여전히 기독교가 일정한 권위를 가지고 있는 이렇게 애매모호한(?) 상황에서, 모든 종교를 똑같이 "형식적으로 무시"하는 것은, 특정 종교들을 "실질적으로 차별"하는 것이 아니겠냐는 겁니다. 즉 "십자가도 금지할 테니 히잡도 금지하자"라는 원칙은 실제로는, "십자가 금지가 기독교에 주는 타격은 별로 없지만 히잡을 금지하는 것이 이슬람교에 주는 타격은 엄청난 상황"을 숨기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겁니다. "십자가 금지"와 "히잡 금지"가 실질적으로는 같을 수 없다는 겁니다.
이렇게 보면... (좀 엉뚱해 보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히잡 착용을 둘러싼 현재의 논란은, 장기적으로는 이슬람교의 미래(?) 또는 나아갈 방향(?)에 대한 하나의 시사점을 주는 것 같습니다. 요컨대 복장에 대한 규제 정도는 앞으론 좀 느슨하게 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뭐 물론 현재에도 이슬람권의 상당부분은 이미 복장에는 관대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 같지만 말입니다... 하여튼 이런 변화가 아무리 필요하다고는 해도, 그것을 해내는 주체가 그들 자신이 아니라면 현재와 같은 저항이 반드시 생기지 않을까 합니다.
끝으로 다시 히잡착용 금지문제로 돌아오면... 저는 그것을 금지하는 것이야말로 서유럽근대국가의 논리에 부합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 또는 공정하냐 부당하냐와는 별개로요.
봄내님이 언급한 "공공영역에서 종교를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것"을 금지한 것이야 말로 원래 공화주의원칙에 포함된 정교분리의 취지와 직결되는 것이며, 그래서 학교에서 선생이 종교상징물을 착용하는 것은 금지되어왔고 이 자체는 더이상 거의 논쟁거리가 아닙니다. 최근 프랑스에서 (그리고 아마도 벨기에서도) 논쟁이 된 것은 학생들의 경우입니다. 다른 학생들에게 줄지 모르는 의미있는 영향력이 별로 없다고 볼수 있는 일개 학생이 종교상징물을 착용하는 것은 정교분리원칙에 위배되는 것인가? 아니면 개개인이 누릴수 있는 종교의 자유 또는 표현의 자유 침해하는 것인가? 그리고 중요한 질문 또 하나. 왜 지금 이 시점에서 그것에 대한 금지가 논해지고 있는가?
제 입장을 먼저 말하면, 현재 서유럽에서 이슬람과 관련해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정교분리원칙과는 사실상 거의 관련이 없다고 보는 편입니다. 히잡착용금지의 경우 늘어난 이슬람 이민자들과 그 2세들이 개별공동체화하는 것을 막고 현지 문화에 "통합" (더 정확히는 흡수) 시키려는 방안의 일환으로 캐캐묵은 원칙을 다시 끄집어 낸것에 더 가깝죠. 여기서 히잡은 오히려 이슬람종교 또는 문화 실천의 하나의 주요한 상징으로서 사용되고 있을 뿐입니다. 예컨대, 독실한 무슬림들은 매일 정해진 기도시간을 지키고 라마단 등 종교적/문화적 의례들을 실천하는데, 그들 중 여성인 경우 대다수가 히잡을 착용한다는 점입니다. 그런 것들이 기독교전통으로부터 정착된 일요일 휴무, 부활절,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서유럽문화와 충돌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실제로 업무시간에 기도시간이라며 사무실 문걸어 잠그고 기도를 하는 이들이 있다고 합니다). 서유럽에 왔으니 현지의 문화를 따르라는 명령인 셈이지요. 사실 이런 문화적 측면 자체 만으로도 그리 큰 문제는 아닐수 있는데..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문화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현지사회에 동화되지 않고 공동체화 하면서 정치적/사회적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고 또 앞으로 일어날 것이라는 것에 대한 경계가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좋게 보면 "통합" 노력인 것이고...
물론 논쟁은 찬반 양쪽에서 다른 논리들이 개입됨으로써 훨씬 더 복잡하죠. 예컨대, 여성주의자들은 이슬람문화권 여성들의 억압이라는 관점에서 히잡착용금지를 찬성한다거나... 그런데 정작 히잡을 착용하는 젊은 여성들 다수는 스스로 일종의 정체성유지 차원에서 히잡을 쓰기를 원하고 있다거나...
요컨대, 히잡착용논란은 궁극적으로 종교의 문제라기보다 문화적 차원, 나아가 정치적 차원의 문제로 보는 것이 더 핵심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비단터
벨기에 히잡착용논란을 깔끔하게 정리해주셨네요. ^^
프랑스에서의 히잡논쟁은 이미 2004년에 "정교분리 원칙을 적용해 공립학교에서 종교적 소속을 드러내는 상징물과 착용을 금지하는 법"이 상하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됨으로써 착용금지 쪽으로 결판이 났습니다.
그런데 작년인가.. 지방의 한 대학에서 장학금(allocation de recherche)을 받는 박사과정생이 히잡을 착용한다는 이유로 대학에서 장학금을 끊은 일이 있어 다시 논란이 됐었습니다. 학교측에서는 장학생이므로 준공무권(agent public)으로 봐야한다는 근거를 댔지만, 그것은 단지 연구장학금일뿐 강의를 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므로 과잉적용의 여지가 크죠. 그 여학생이 부당하다며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는데 결과가 어찌 나왔는지는 모르겠네요.